
지난달 남편 의대 동기들이랑 강남에서 모임 했어요. 다들 이제 40대 중반이라 병원장이나 제약회사 임원 된 친구들이 많은데, 그날 한 친구가 술 몇 잔 마시더니 갑자기 한숨을 푹 쉬더라고요. "야, 나 이번에 진짜 큰일 날 뻔했다."
글로벌 제약회사 한국 법인 CFO로 있는 친구였어요. 기능통화를 달러에서 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외환차손익 70억을 잘못 처리했대요. 본사에서 감사 나왔는데 담당자가 서류 보더니 "이거 중대 오류 아닌가요?"라고 했다는 거예요. 70억이요. 그 친구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더라고요.
저는 Big4 회계법인에서 10년 넘게 일했거든요. 다국적기업들 회계 자문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 얘기 듣자마자 "일단 진정하고, 내일 아침에 나한테 전화해"라고 했죠.
사실 기능통화 변경이 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쉽게 말하면 회사가 주로 쓰는 돈의 단위를 바꾸는 거예요. 한국에서 장사하는데 계속 달러로 장부 쓰면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원화로 바꾸는 건데, 이게 생각보다 복잡해요.
문제가 뭐냐면, 한국은 K-IFRS라는 회계기준을 쓰고, 미국 본사는 US GAAP이라는 다른 기준을 써요. 한국 기준은 "오늘부터 바꿔요"라고 하면 되는데, 미국 기준은 "과거 것도 다 다시 계산해야 해요"라고 하거든요. 여기서 차이가 나는 거죠.
그 친구 회사가 정확히 이 문제에 걸렸어요. 매출 100밀리언 달러를 환율 1,200원으로 계산하면 1,200억 원이잖아요. 그런데 기능통화 바꾸면서 기존에 달러로 갖고 있던 자산들을 다시 계산하는 걸 빼먹었대요. 그래서 70억 차이가 난 거예요.
더 큰 문제는 세금이었어요. 이 70억을 그냥 손실로 처리하면 법인세를 안 내도 되는데, 세무서에서는 "이건 실제 손실이 아니니까 세금 내세요"라고 한대요. 15억 정도 더 내야 했던 거죠.
제가 그 친구한테 처음 한 말이 "지금부터 6개월 전으로 돌아가서 뭘 했는지 다 정리해"였어요. 기능통화 변경은 최소 6개월은 준비해야 하거든요.
먼저 왜 바꾸려고 하는지부터 명확해야 해요. 매출의 70% 이상이 원화로 들어오나? 직원 월급은 뭘로 주나? 원재료는 뭘로 사나? 이런 걸 다 따져봐야 해요. 그 친구 회사는 한국 매출이 30%에서 75%로 늘어났고, 임상시험 비용도 80%를 원화로 내고 있었어요. 바꿀 만했죠.
그 다음은 언제 바꿀지 정하는 거예요. 회계연도 중간에 바꾸면 복잡해져요. 차라리 1월 1일이나 회계연도 시작할 때 바꾸는 게 깔끔해요.
실제로 바꿀 때는 자산을 종류별로 나눠서 처리해야 해요. 현금이나 채권 같은 건 바꾸는 날 환율로 계산하고, 건물이나 기계 같은 건 산 날 환율 그대로 두고... 복잡하죠? 그래서 실수가 나오는 거예요.
시스템도 다 바꿔야 해요. ERP라고 회사에서 쓰는 전산 시스템 있잖아요. 거기 기준 통화 설정 바꾸고, 보고서 양식도 다 수정하고. 그 친구 회사는 이것만 3개월 걸렸대요.
제일 무서운 건 감사받을 때예요. 회계법인에서 와서 "이거 왜 이렇게 했어요?" "저거는 왜 안 했어요?" 계속 물어봐요. 작년에 어떤 회사는 본사 차입금 500억 환산하는 날짜를 하루 틀렸다가 23억 차이 나서 감사의견에 문제 생겼어요.
그래서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체크리스트 만들어놓으라는 거예요. 본사 승인 받았나, 세무서에 물어봤나, 감사인한테 미리 얘기했나, 은행 대출 계약서에 문제 없나... 이런 거 하나씩 체크해야 해요.
요즘 추세가 있어요. 테슬라 아시아 법인은 엔화에서 달러로 바꿨고, 삼성 멕시코는 달러에서 페소로 바꿨어요. IKEA 한국도 유로에서 원화로 바꿨대요. 다들 현지 통화로 가는 추세예요. 환율 변동이 너무 심하니까.
그 친구가 제일 후회한 건 파생상품 정리를 미리 안 한 거였어요. Cross Currency Swap이라고 환율 위험 막는 상품이 있는데, 이걸 미리 했으면 70억 손실을 많이 줄일 수 있었대요. 지금은 이걸로 연간 12억씩 아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회계법인 다니면서 이런 케이스를 수십 개는 봤어요. 대부분 "설마 이게 문제가 되겠어?"하다가 터져요. 특히 의료기기나 제약회사처럼 수입이 많은 회사들은 더 조심해야 해요.
그 친구는 다행히 본사 설득해서 추가 시정 조치로 마무리했어요. 지금은 매달 환산 차이 분석하고, 분기마다 환율 영향 체크하고, 1년에 한 번씩 기능통화가 맞는지 재평가한대요. 처음부터 이렇게 했으면 70억 사고는 없었을 텐데.
남편이 그날 집에 와서 "의사는 환자 한 명 잘못 보면 한 명만 문제지만, 회계사는 숫자 하나 틀리면 회사 전체가 난리 나는구나"라고 하더라고요. 맞는 말이에요.
기능통화 변경은 정말 신중해야 해요. 단순히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 되지"가 아니라, 회사 전체 시스템이 바뀌는 거예요. 세금도 달라지고, 보고 체계도 달라지고, 본사와의 관계도 달라져요.
제가 그 친구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다음부터는 뭐든 바꾸기 전에 먼저 전문가한테 물어봐"였어요. 70억이라는 수업료 치고는 너무 비쌌으니까요. 그래도 더 큰 사고 나기 전에 잡아서 다행이었죠.
요즘도 가끔 그 친구한테 전화 와요. "이번엔 해외 자회사 청산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해?" 이제는 먼저 물어보더라고요. 한 번 데면 뜨거운 줄 아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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