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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 아내

프로모션 미팅, 그리고 현실

by 연우아빠45 2025. 8. 15.

"We need to talk about your career path."

파트너가 11월에 이렇게 말했을 때, 심장이 쿵 했어요. 좋은 얘기일까, 나쁜 얘기일까. 한국에서는 이런 말 들으면 대부분 좋은 소식이었는데.

회의실 들어가니까 파트너 둘, HR 매니저 하나. 뭔가 심각한 분위기. "Have a seat"라고 하는데, 의자에 앉는 것도 조심스러웠어요.

"You've been with us for almost two years now"라고 시작하네요. 맞아요, 벌써 2년. 시간 빠르다. "Your work quality is excellent"라고. 오, 칭찬? "Very thorough, very detailed"라고 덧붙여요.

"But..."

아, 역시 But가 있구나.

"We feel you're not progressing at the pace we expected."

예상했던 말이지만, 듣고 나니 가슴이 철렁했어요. 한국에서 시니어 매니저였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여기서는 2년차 스태프니까.

"Your technical skills are strong, but client interaction needs improvement"라고. 맞아요. 클라이언트 미팅 때마다 긴장해서 말이 잘 안 나와요. 영어가 짧으니까.

"We're placing you on a performance improvement plan"이라고 해요. PIP. 한국에서는 이거 받으면 퇴사 신호인데. 손에 땀이 났어요.

HR 매니저가 서류 주면서 설명해요. 3개월 동안 개선 사항 체크하고, 그 후에 재평가한다고. Communication skills, leadership, efficiency. 다 부족한 것들이네요.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화장실 가서 10분 동안 진정했어요. 40대에 PIP라니. 창피하고 서러웠어요.

집에 가서 남편한테 얘기했어요. "나 경고 받았어"라고. 남편이 "그만두고 싶어?"라고 물어요. 솔직히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니, 해볼게"라고 대답했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다음 날부터 변화를 시도했어요. 클라이언트 이메일에 더 적극적으로 답하고, 미팅에서 질문도 하고. 어색하고 틀려도 일단 말하기로 했어요.

첫 번째 도전은 감사 플래닝 미팅. CFO 앞에서 감사 계획 발표하기. 전날 밤 스크립트 다 써서 외웠어요. 거울 보고 연습하고 또 연습.

미팅 날, 떨렸지만 해냈어요. "Based on our risk assessment..."로 시작해서 20분 발표. CFO가 질문 몇 개 했는데, 준비한 거라 대답할 수 있었어요. "Good presentation"이라고 해줬을 때, 안도감이.

매니저가 나중에 "That was much better"라고 했어요. 진짜? 나아진 거 맞아? "Keep it up"이라고 격려해줬어요.

스태프들 교육도 맡았어요. 신입들한테 감사 절차 설명하는 거. 한국에서는 매일 했던 일인데, 영어로 하려니 또 새로워요. 그래도 하나씩 설명했어요. "Any questions?"라고 물었더니 질문이 쏟아져서 당황했지만.

클라이언트 중에 어려운 사람이 있어요. Controller인데, 매번 "This is how we've always done it"이라고 고집 부려요. 전에는 그냥 "Okay"했는데, 이번엔 "Let me explain why we need it differently"라고 설명했어요. 논쟁이 됐지만, 결국 제 의견을 받아들였어요.

팀 미팅에서도 발언 늘렸어요. "I have a suggestion"으로 시작해서 의견 내고. 처음엔 다들 놀란 표정이었어요. 조용했던 아시안이 갑자기 말을 많이 하니까.

택스 시즌 돌아왔어요. 작년보다 많은 클라이언트 배정받았어요. PIP 받고 있는데 일을 더 준다? 테스트인가? "We trust you can handle it"이라고 매니저가. 신뢰인지 시험인지.

클라이언트 한 명이 복잡한 세금 이슈 가져왔어요. International tax 관련. 한국 경험이 도움됐어요. "I've seen similar cases in Korea"라고 설명하니까 다들 관심 가져요. 처음으로 제 경험이 인정받는 기분.

3개월 후, PIP 리뷰 미팅.

"Significant improvement"라고 파트너가 말해요. 정말? "Especially in client communication"이라고. "Your confidence has grown"이라고도.

"We're removing you from PIP"

귀를 의심했어요. 벗어났다고? "But we want to see continued improvement"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일단 위기는 넘겼어요.

"Actually, we have another thing to discuss"라고 파트너가. 또 뭐야?

"We'd like to promote you to senior staff."

프로모션? 진짜? "Your technical skills warrant it"이라고. 2년 만에 시니어라니. 한국 같으면 4-5년 걸릴 텐데.

물론 한국에서는 이미 시니어 매니저였지만, 여기서 다시 시니어가 됐다는 게 의미 있었어요. 미국 시스템에서 인정받았다는 증거니까.

월급도 15% 올랐어요. 여전히 한국 때보다는 적지만, 오른다는 게 중요한 거죠.

동료들이 축하해줬어요. "Well deserved"라고. 정말 deserve한 건지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한국 동기가 파트너 됐다는 소식 들었어요. 축하한다고 메시지 보내면서도 복잡했어요. 나는 이제 겨우 시니어인데. 그래도 여기서 시니어가 된 것도 성취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오늘 새로운 팀원들과 첫 미팅했어요. "I'm your senior on this engagement"라고 소개했어요. Senior라는 타이틀이 어색하면서도 뿌듯해요.

PIP에서 프로모션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3개월이었어요.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어요. 실은 매일 포기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축하해. 너 정말 대단해"라고 해줬어요.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버틴 거예요. 하지만 때로는 버티는 것도 대단한 일이죠.

내일부터는 시니어로서 일해야 해요. 더 많은 책임, 더 많은 기대. 부담스럽지만 해볼게요. 여기까지 왔는데, 더 갈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