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이맘때쯤 정형외과 원장님 한 분이 사무실로 찾아오셨어요. "ChatGPT한테 물어봤는데 답이 다 달라서요"라면서 A4 용지 몇 장을 꺼내셨죠. MRI 도입할 때 구매가 나은지 리스가 나은지 AI한테 물어본 답변들이었는데, 볼 때마다 결론이 다르더라고요.
그날 상담이 3시간 넘게 걸렸어요. 7억짜리 MRI 하나 들여오는 건데, AI는 그냥 금리 계산만 해주더라고요. 구매하면 이자 얼마, 리스하면 월 납입금 얼마. 근데 실제로는 그게 다가 아니잖아요.
남편이 의사라서 아는 건데, 내년에 초음파 수가가 오를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원장님한테 "MRI는 올해 말에 도입하시되, 초음파는 내년 초까지 기다리세요. 투자세액공제 타이밍 맞추면 1억은 더 아낄 수 있어요"라고 했죠. AI가 이런 걸 알려줄 수 있을까요?
우리 사무실도 작년에 완전히 바뀌었어요. 예전엔 부가세 신고 같은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제 그런 건 AI 프로그램이 10만원에 다 해주더라고요. 처음엔 진짜 망하는 거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오히려 매출이 40% 늘었어요. 이상하죠? 단순 신고는 AI한테 맡기고, 저희는 복잡한 상담만 받기 시작했거든요. 병원장 개인 차량을 법인 명의로 바꿀 때 세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의료기기 리스할 때 부가세 공제를 어떻게 받는지, 이런 거요.
예전엔 부가세 신고 50만원 받고, 상담은 그냥 서비스로 해드렸어요. 지금은 반대예요. 부가세는 10만원, 대신 절세 컨설팅은 건당 200만원에서 300만원 받아요. 정형외과 원장님 MRI 건도 300만원 받았고요.
병원장들이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게 뭔지 아세요? "차를 법인 명의로 바꾸면 세금 얼마나 아껴요?" 이거예요. AI한테 물어보면 "부가세 공제 가능합니다"라고만 나와요. 실제로는 업무용 사용 비율 따져야 하고, 취득세도 내야 하고, 보험도 바꿔야 하는데 말이죠.
남편이 병원에서 듣고 온 얘기들이 의외로 도움이 많이 돼요. 어느 과가 수가 인상 예정이라든지, 새로운 의료기기 지원 정책이 나온다든지. 이런 정보를 미리 알면 장비 구입 시점을 조정해서 세금을 확 줄일 수 있거든요.
작년에 한 내과 원장님은 저희 조언대로 장비 구입 시기를 3개월 미뤘다가 정부 지원금 2천만원 더 받으셨어요. AI는 현재 법령만 알려주지, 앞으로 바뀔 정책은 모르잖아요.
솔직히 AI 때문에 단순 업무는 정말 편해졌어요. 예전엔 장부 정리하느라 밤새는 날이 많았는데, 이제는 AI가 다 해주니까. 그 시간에 고객 상담하고, 새로운 절세 방법 연구하고. 오히려 일이 재밌어졌어요.
의료법인 전환 상담 같은 건 특히 복잡해요. 개인병원을 법인으로 바꾸면 세금은 줄지만, 의료법상 제약도 생기고, 상속 문제도 달라지거든요. 이런 걸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건 아직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요즘 회계사들 사이에서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AI가 계산은 해주지만, 설계는 못 한다"고. 맞는 말 같아요. 숫자 계산이야 AI가 훨씬 빠르고 정확하지만, 고객 상황에 맞는 전략을 짜는 건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니까요.
얼마 전에 한 병원장님이 "AI 시대에도 회계사가 필요한가요?"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답했어요. "단순 신고만 하실 거면 AI로 충분해요. 하지만 세금을 진짜로 아끼고 싶으시면, 사람을 찾으셔야 해요."
그 원장님, 결국 저희랑 연간 계약 하셨어요. 월 관리료는 예전보다 비싸지만, 절세액이 그보다 훨씬 크니까요. 작년 한 해만 1억 2천만원 아끼셨대요.
AI 시대라고 해서 회계사가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하는 일이 바뀌는 거죠. 계산하는 회계사에서 설계하는 회계사로. 특히 의료 분야처럼 규제도 복잡하고 투자 금액도 큰 업계에서는 오히려 전문가의 가치가 더 올라가는 것 같아요.
남편이 가끔 농담으로 그래요. "너희 회계사들도 이제 AI 의사 같은 거네. 진단은 기계가 하고, 치료 계획은 사람이 짜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더라고요. AI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거죠. 그게 앞으로 살아남는 방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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