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 you stay late tonight?"
매니저가 물어봤을 때가 2월 중순. 택스 시즌 막 시작했을 때였어요. "Sure"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애들 픽업은 어떡하지' 생각했죠. 한국에서는 시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이면 됐는데.
미국 회계법인 택스 시즌, 정말 다르더라고요. 한국은 3월 법인세, 5월 종합소득세 이렇게 나뉘어 있잖아요. 여기는 4월 15일 하루에 다 몰려요. 개인 택스, 법인 택스, 다 4월 15일. 2월부터 4월까지는 지옥이에요.
첫 번째 충격은 클라이언트들이 서류를 안 가져온다는 거예요. "I'll email it to you"라고 하고는 감감무소식. 한국에서는 세무 대리인한테 서류 안 주면 큰일 나는 줄 아는데, 여기 사람들은 "Oh, I forgot"이러면서 웃어요. 잊었다고요? 세금 신고를?
W-2, 1099, K-1... 처음엔 이 서류들이 뭔지도 몰랐어요. 한국의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이 W-2고, 사업소득이 1099라는 걸 알기까지 한참 걸렸죠. 구글링하면서 하나씩 배웠어요. 10년 경력 회계사가 구글링하면서 일한다니.
첫 개인 택스 리턴 준비할 때 기억나요. 스탠다드 디덕션이 뭔지, 아이템아이즈드 디덕션이 뭔지. 한국은 소득공제, 세액공제로 깔끔한데, 여기는 왜 이렇게 복잡한지. 클라이언트가 "Should I itemize?"라고 물어봤을 때, "Let me check"라고 하고는 화장실 가서 구글링했어요.
3월 되니까 야근이 일상이 됐어요. 8시, 9시, 10시... 한국 회계법인도 바빴지만, 거기는 그래도 팀이 있었잖아요. 여기는 각자 자기 클라이언트 알아서. 도와달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다들 바쁘니까.
실수 하나 했어요. 큰 실수. 숫자 입력하다가 한 자리를 빼먹었는데, 클라이언트가 환급받을 세금이 10배가 됐어요. 리뷰 단계에서 걸렸지만, 매니저 표정이... "Please be more careful"이라고만 했지만, 실망한 게 보였어요.
점심 시간도 없어졌어요. 책상에서 샌드위치 먹으면서 일해요. 어느 날 한국 김밥이 너무 그리워서 한인마트 가서 김밥 사 왔는데, 동료가 "What's that?"라고 물어요. "Korean sushi roll"이라고 대충 설명했더니 "Interesting"이라고. 관심 없는 거 티 나더라고요.
한국계 클라이언트 몇 명 생겼어요. 영어 못하시는 분들. 처음엔 반가웠는데, 이분들이 더 까다로워요. "한국에서는 이렇게 안 했는데"라고 계속 비교하시고. 저도 한국에서는 안 이랬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죠.
4월 첫째 주, 거의 회사에서 살았어요. 집에는 잠만 자러 가고. 애들이 "엄마 회사에서 살아?"라고 물어요. 남편도 병원에서 바쁘고. 애들 저녁은 피자, 중국 음식, 또 피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4월 14일, 마감 전날. 사무실이 전쟁터예요. 프린터는 계속 돌아가고,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리고. 클라이언트가 마지막 순간에 "Oh, I forgot to mention, I sold some stocks"라고. 지금요? 지금 그 얘기를 해요?
자정 넘어서 퇴근했어요. 주차장에 차가 제 차 포함해서 세 대. 다 회계사들. 한국 회계법인 생각났어요. 거기도 이맬즘 다들 사무실에 있겠죠. 어느 나라나 회계사는 똑같구나.
4월 15일, 오후 5시 정각. 마지막 리턴 e-file 하고, 다들 박수쳤어요. "We survived!"라고 누가 소리쳤어요. 생존. 맞는 표현이에요.
매니저가 "Good job everyone, see you tomorrow"라고. 내일도 출근이라니. 한국은 마감 끝나면 하루 쉬게 해줬는데. 그래도 불평 못하죠. 신입이니까.
집에 가니 남편이 케이크 사놨어요. "택스 시즌 종료 축하"라고 초까지 꽂아서. 애들이 "엄마 이제 집에 있어?"라고 물어요. "응, 이제 괜찮아"라고 했지만, 내년 2월이 또 올 거예요.
다음 날, 한국계 클라이언트한테 전화 왔어요. "정말 수고하셨어요. 한국 분이 계셔서 든든했어요"라고. 이 한마디에 또 울컥. 영어로 100번 "Good job" 듣는 것보다 한국말로 "수고하셨어요" 한 번이 더 와닿네요.
5월부터는 좀 여유 있어요. 오전에 커피 마시면서 이메일 체크하고, 점심도 밖에 나가서 먹고. 동료들이랑도 대화할 시간이 생겼어요. "How was your tax season?"이라고 서로 물어보는데, 다들 "Crazy"라고.
매니저가 저를 불렀어요. "Your first tax season, how was it?" 솔직히 말하고 싶었어요. 힘들었다고, 영어도 모르겠고, 시스템도 모르겠고, 매일 구글링했다고. 그냥 "Challenging but learned a lot"이라고 했죠.
"You did well for your first year"라고 해줬어요. 정말? 잘했다고? 실수도 많았는데? "Everyone makes mistakes in their first season"이라고. 위로인지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어요.
6월에 연봉 조정 통보 받았어요. 3% 인상. 물가 상승률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올랐다는 게 중요한 거죠. 인정받았다는 증거니까.
한국 회계법인 동기가 카톡 보냈어요. "거기 어때? 힘들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응, 근데 할 만해"라고 보냈어요. 정말 할 만한가? 모르겠어요. 그냥 하는 거죠.
오늘 점심 시간에 커피 마시면서 생각했어요. 첫 택스 시즌 살아남았다고. 영어도 서툴고, 시스템도 모르는 외국인 회계사가 미국 택스 시즌을 통과했다고. 작은 성취지만, 저한테는 큰 의미예요.
내년 택스 시즌은 좀 나아지겠죠? 최소한 W-2가 뭔지, 1099가 뭔지는 아니까. 스탠다드 디덕션도 알고, 아이템아이즈드도 알고. 조금씩, 천천히, 그렇게 배워가는 거겠죠.
남편이 "첫 택스 시즌 어땠어?"라고 물어요. "너의 첫 펠로우십이랑 비슷해"라고 대답했어요. 모르는 것투성이, 실수투성이, 그래도 버틴 거. 우리 둘 다 그렇게 버티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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