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금요일, 남편이 병원 이사회에서 돌아와서는 한참을 말이 없더라고요. 뭔가 심각한 일이 있나 싶어서 물어봤더니, "우리 병원이 충당부채로 25억을 잡았어"라고 하는 거예요.
처음엔 무슨 의료사고라도 난 줄 알고 깜짝 놀랐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ESG 목표를 못 맞춰서 투자자들한테 소송당할 가능성 때문에 미리 회계 처리를 한 거라더군요. 저도 회계사지만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 좀 놀랐어요.
사실 작년에 남편 병원에서 큰 결정을 했었거든요. ESG 채권 500억을 발행하면서 "2025년까지 탄소배출 30% 줄이겠다"고 공언했어요. 그때만 해도 다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대요. 병원에서 에너지 절약 캠페인도 하고, LED 조명도 바꾸고, 열심히 했죠.
근데 올해 들어서 측정해보니 달성률이 겨우 12%더라고요. 이대로 가면 내년까지 30%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었어요. 병원이라는 곳이 24시간 돌아가잖아요. MRI, CT 같은 대형 장비들은 전기를 엄청 먹고, 수술실은 항상 일정 온도를 유지해야 하고... 생각보다 탄소 줄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법무팀에서 분석을 했대요. 만약 목표 달성 못하면 ESG 채권 투자자들이 소송을 걸 확률이 50%는 된다고. 예상 손실액을 계산해보니 대략 25억원. 이게 단순히 "혹시 모르니까" 수준이 아니라, 회계 기준상 충당부채로 잡아야 할 정도로 현실적인 위험이라는 거죠.
제가 집에서 K-IFRS 1037 기준을 다시 찾아봤어요. 발생 가능성이 50% 이상이고 금액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으면 충당부채로 인식해야 한다고 되어 있더군요. 50% 미만이어도 주석에는 공시해야 하고요. 남편 병원은 이미 50%를 넘었으니까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회계사 입장에서 보면 이게 참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충당부채로 잡으면 당기 비용이 되니까 회계상으로는 법인세가 줄어들거든요. 25억 비용 처리하면 세율 25% 적용해서 대략 6억 정도 세금이 줄어드는 셈이죠. 그런데 문제는 세무서에서 이걸 인정 안 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실제로 손실이 확정된 게 아니니까 세무조정 때 다시 가산될 수 있어요.
더 복잡한 건 의료기관만의 특수한 ESG 리스크가 있다는 거예요. 탄소배출만 문제가 아니거든요. 의료폐기물 처리도 큰 이슈예요. 혈액이나 약물 폐기물을 잘못 처리하면 환경단체나 주민들이 소송 걸 수도 있고...
그리고 요즘 간호사 근무환경 문제도 ESG의 'S', 그러니까 사회 영역에 해당한대요. 간호사들이 너무 힘들게 일한다고 집단소송이라도 걸면, 이것도 ESG 리스크가 되는 거죠. 실제로 작년에 어느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집단 이직 사태가 났을 때, ESG 평가등급이 확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최근에 자문하고 있는 IT 회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거기는 데이터센터 때문에 전력 사용량이 어마어마한데, 작년에 녹색채권 발행하면서 "2년 내 재생에너지 50% 전환"을 약속했거든요. 근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거예요.
그 회사 CFO가 저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이거 충당부채로 잡아야 하나요?" 저는 일단 변호사랑 상의해보고, 소송 가능성을 정확히 평가해보라고 했어요. 만약 50% 넘으면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요.
올해부터 제도도 많이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금융위원회에서 ESG 공시를 의무화했는데, 만약 허위로 공시하거나 누락하면 과징금이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대요. 한국거래소는 ESG 채권 조건을 못 지키면 아예 상장폐지 사유로 만들겠다는 얘기도 있고요.
기관투자자들도 예전과는 달라졌어요. 국민연금이나 큰 자산운용사들이 ESG 목표 못 지킨 기업한테는 주주대표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거든요. 예전에는 그냥 "노력하겠습니다" 하면 넘어갔는데, 이제는 진짜 법적 책임을 묻는 시대가 된 거죠.
남편 병원에서는 이제 분기마다 ESG 달성률을 체크하는 TF팀을 만들었대요. 의사, 간호부, 시설관리팀, 회계팀이 다 모여서 회의를 한다고... 탄소배출은 얼마나 줄었는지, 의료폐기물은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지, 직원들 근무환경은 괜찮은지 일일이 체크한대요. 그리고 미달성 위험이 있으면 바로 충당부채 금액을 조정하고요.
제가 보기엔 이게 앞으로 더 심해질 것 같아요. ESG가 단순히 이미지 관리 차원이 아니라, 정말 재무제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거든요. 병원이든 일반 기업이든, ESG 목표를 세울 때부터 신중해야 해요. 무작정 높은 목표 잡았다가 나중에 소송당하고 충당부채 잡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질 거예요.
참,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ESG 보험이라는 게 있어요. ESG 목표 미달성으로 소송당했을 때 손실을 보상해주는 보험인데, 보험료는 100% 손금 인정돼요. 남편 병원도 이거 가입하려고 알아보고 있대요. 충당부채 잡는 것보다는 보험료 내는 게 세무상으로는 더 유리하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이번 일을 겪으면서 ESG를 다시 보게 됐어요. 그냥 좋은 일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더라고요. 회계사로서도, 의사 가족으로서도, 이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SG 충당부채, 앞으로 재무제표에서 자주 보게 될 항목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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