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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 아내

'Sorry'가 입에 붙은 한 달

by 연우아빠45 2025. 8. 11.

남편 출근 첫날, 저 혼자 애들 학교에 데려다줬어요. GPS "Turn left"라고 하는데 어디서 좌회전하라는 건지. 뒤에서 빵빵거리고. 식은땀이 줄줄 났어요. 큰애가 "엄마, 괜찮아?"라고 묻는데, 괜찮은 척하느라 ", 엄마 잘하고 있어"라고 했죠. 학교 주차장에 겨우 도착했는데 주차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또 한참을 헤맸네요.

큰애 교실 앞에서 선생님이 "Are you new?"라고 물어보시는데, 그 다음 말을 못 알아들었어요. 계속 고개만 끄덕이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종이 하나 주시면서 뭐라고 설명하시는데... 큰애가 "엄마, 내일까지 써오래"라고 통역해줬어요. 10살짜리한테 통역 받는 엄마라니.

작은애는 킨더가든 첫날부터 울었대요. 픽업 갔더니 선생님이 "He cried a lot today"라고 하시는데, 'a lot'이 얼마나 많이 운 건지. 집에 오는 내내 "유치원 싫어, 한국 유치원 갈래"라고 울어요. 저녁에 남편한테 전화했더니 남편도 힘들었나 봐요. "나도 오늘 하루 종일 뭐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라고.

은행 계좌 만드는 것도 일이었어요. SSN이 아직 안 나와서 그런지 서류를 산더미처럼 요구하더라고요.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데 반도 못 알아듣고. "Can you repeat that?"만 몇 번 했는지. 그래도 체크카드 받았을 때는 뭔가 해낸 기분이었어요. 작은 성취감이랄까.

마트 가는 게 일상인데도 매번 도전이에요. 처음엔 Walmart만 갔어요. 거기가 제일 싸다고 해서. 그런데 한국 음식 재료가 없어요. 김치도 없고 고추장도 없고. 한인마트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차로 40. 가격은 두 배. 콩나물 한 봉지에 4불이라니. 그래도 된장 보는 순간 눈물 날 뻔했어요.

애들 도시락 싸는 게 스트레스예요. 한국에서는 급식이 당연했는데. 여기는 카페테리아 음식이 정크푸드뿐이래요. 피자, 햄버거, 너겟. 그래서 도시락 싸주는데, 다른 애들 도시락 보니까 그냥 샌드위치에 과일 조금. 우리 애들은 김밥 싸갔다가 "이게 뭐냐"는 질문 받았대요.

큰애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 얘기해주는데, 마음이 아파요. "오늘 체육 시간에 팀 짤 때 나만 남았어"라고. 말을 못하니까 아무도 같이 하려고 안 한대요. "그래도 선생님이 어디 넣어줬지?"라고 물으니 ", 근데 나 때문에 졌어"라고.

첫 한 달 동안 제일 많이 한 말이 "I'm sorry"인 것 같아요. 영어 못 알아들어서 sorry, 운전 서툴러서 sorry, 줄 잘못 서서 sorry. 어느 날 작은애가 "엄마, sorry가 뭐야?"라고 물어보더라고요. 미안하다는 뜻이라고 했더니 "엄마 왜 맨날 미안해?"라고.

병원에서 남편이 실수했대요. 환자 차트 작성하는 시스템이 한국이랑 완전 달라서 엉뚱한 데 기록했다고.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잠을 못 자요.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의학 용어 공부하고.

동네 도서관 프로그램 등록하러 갔어요. Story time이라고 아이들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 작은애 영어 노출 시키려고. 그런데 엄마들끼리 다 아는 사이더라고요. 저만 혼자 어색하게 앉아 있었어요. 누가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물어서 "Korea"라고 했더니 "North or South?"라고. 진짜 이런 질문 받을 줄이야.

장 보고 오다가 펑크 났어요. 타이어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 나는데 뭔지 몰라서 계속 운전했죠. 차가 이상하게 기울어서 그제야 세웠는데. 보험회사 전화하는데 자동응답이 뭐라는지 못 알아듣겠고. 결국 옆에 지나가던 사람한테 도움 요청했어요. 멕시코 분이었는데 친절하게 타이어 갈아 끼워주셨어요. 영어도 서툰 사람끼리 손짓발짓으로 소통하는데, 웃기면서도 고마웠어요.

첫 월급 받았어요. 남편이. 한국보다 적어요. 펠로우십이라 정식 의사 월급이 아니거든요. 집세 내고, 차 렌트비 내고, 보험료 내고 나니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제가 빨리 일 시작해야 하는데 EAD가 안 나와요. 3개월 걸린대요. 3개월을 어떻게 버티나.

큰애가 드디어 친구 하나 사귀었어요. 중국에서 온 애. 영어 못하는 거 똑같아서 친해졌대요. 둘이 그림 그리면서 논대요. 말 안 통해도 친구는 되나 봐요. 그 애 엄마도 영어 못해서 우리끼리 번역기로 대화해요. "Your son, my son, friend, good"이러면서.

작은애는 적응이 좀 빨라요. 선생님이 "Good job!"이라고 스티커 붙여줬다고 자랑하더라고요. 뭘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I want water"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애들은 정말 빠른 것 같아요.

주말에 처음으로 바닷가 갔어요. 산타모니카 비치. 2월인데도 사람들이 수영해요. 미쳤나 싶었는데, 애들이 "우리도 들어가자"고 해서 발만 담갔어요. 차가운데 기분 좋더라고요. 큰애가 "엄마, 여기 괜찮은 것 같아"라고 했어요. 처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해줘서 고마웠어요.

한국이랑 화상통화 할 때마다 울어요. 엄마 얼굴 보면 눈물부터 나요. "잘 지내니?"라고 물으시는데 ""라고 대답하면서도 눈물이 줄줄. 엄마도 우시고. 남편이 "울지 좀 마, 애들 보고 있잖아"라고 하는데, 참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오늘 좋은 일 있었어요. 카페에서 커피 주문하는데 바리스타가 "Your English is getting better!"라고 했어요. 매일 같은 카페 가서 똑같은 거 시키는데, 제 영어가 늘고 있는 걸 알아봐 준 거예요. "Thank you"라고 했는데 울컬했어요.

첫 한 달, 정말 롤러코스터 같았어요. 하루는 "우리 잘 왔어"싶다가도, 다음 날은 "당장 돌아가고 싶어"하고. 남편도 저도 애들도 다 그런 것 같아요. 서로한테 힘든 거 숨기면서, 또 서로 의지하면서.

내일은 뭐 해야 하지. 애들 학교 숙제 봐주고, 장 보고, 병원 서류 떼러 가고. 끝이 없네요. 한국에서는 당연했던 일들이 여기서는 다 도전이에요. 그래도 하나씩 해내고 있어요. 느리지만 앞으로 가고 있어요. 그거면 된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