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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 아내

준비라는 게 가능한 걸까

by 연우아빠45 2025. 8. 9.

큰애가 어제 울었어요. 학원 끝나고 집에 왔는데 눈이 빨갛더라고요. "엄마, 나 영어 못하는데 어떻게 해?" 초등학교 4학년인데, 갑자기 미국 학교 간다니까 겁이 났나 봐요. 작은애는 아직 7살이라 그런지 "미국 가면 디즈니랜드 가는 거야?"라고만 묻고. 형은 울고 동생은 신나하고, 저는 그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었어요.

사실 아이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처음 포스팅에서 언급을 안 했는데, 우리한테 아이가 둘 있거든요. 첫째가 10, 둘째가 7. 미국 가는 결정을 하면서 제일 고민했던 게 아이들 문제였어요. 어른들이야 각오하고 가는 거지만, 아이들은 선택권이 없잖아요.

비자 준비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남편은 J-1 비자로 fellowship 과정 들어가는 거라 병원에서 DS-2019 받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저였죠. J-2로 가서 EAD 받아야 일할 수 있다는데, 그게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회계법인에서 오퍼 받았지만 "EAD 나오면 연락드릴게요"라고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쪽에서도 기다려준다고는 하는데, 속으로는 불안하죠.

비자 인터뷰 날 기억나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이들 깨우고, 택시 타고 대사관 가는데 큰애가 "우리 왜 이렇게 일찍 가야 돼?"라고 투덜대더라고요. 대사관 앞에 줄 서 있는 동안 작은애는 졸려서 칭얼대고. 인터뷰는 5분도 안 걸렸어요. "왜 미국 가시나요?" "얼마나 계실 건가요?" . 5분을 위해 몇 달을 준비했는데.

주거 문제가 진짜 골치였어요. 한국에서 미국 집 구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구글 맵으로 동네 돌아다니고, Zillow에서 매일 렌트 매물 확인하고. 남편이 갈 병원 근처로 해야 하는데 학군도 봐야 하고. 학군 좋은 데는 렌트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더라고요.

처음엔 "학군 좋은 데로 무조건 가자"고 했는데, 렌트비 보고 현실 자각했어요. 3000? 우리 월급 다 갖다 바쳐도 모자랄 판. 결국 중간 정도 학군에 병원에서 차로 30분 거리로 정했어요. 사진으로만 보고 계약하는 게 불안했지만, 현지 한인 부동산 분이 "괜찮은 집이에요"라고 해서 믿기로 했죠. , 안 좋으면 1년 후에 옮기면 되니까.

학교 등록이 또 난관이었어요. 예방접종 기록 번역하고, 한국 학교 성적표 떼고. 그런데 미국은 학년 계산이 달라서 큰애가 4학년 갈지 5학년 갈지도 애매하고. 이메일 주고받는데 답장이 너무 늦어서 속 터지는 줄 알았어요. "We'll review and get back to you"만 세 번은 받은 것 같아요.

어제 큰애 영어 학원 상담 갔었어요. 원장님이 "미국 가시면 처음 6개월은 정말 힘드실 거예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이가 학교에서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하고 올 수도 있다고. 듣는데 가슴이 철렁했어요. 우리 애가 한국에서는 반장도 하고 발표도 잘하는 애인데.

남편은 "애들은 적응 빨라"라고 하는데, 글쎄요. 어른 입장에서 하는 말 같아요. 큰애가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자다가 깨서 "엄마, 나 친구 못 사귀면 어떡해?"라고 물어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금방 사귈 거야"라고 하기엔 저도 확신이 없고.

작은애는 작은애대로 걱정이에요. 아직 한글도 완벽하지 않은데 영어라니. 한국 유치원에서는 한글 떼는 게 중요하다고 난리인데, 우리는 이제 알파벳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잖아요.

집 정리하면서 아이들 물건 버리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큰애가 아기 때부터 모은 레고들, 작은애가 좋아하는 인형들. 다 가져갈 수 없으니까 선택해야 하는데, 애들한테는 다 소중한 거잖아요. "이거는 두고 가자"고 하면 "싫어,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라고 하고.

학원도 다 정리해야 했어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미국 가서도 피아노 계속 시키세요"라고 하시는데, 거기 가서 한국인 피아노 선생님 찾기가 쉽겠어요? 태권도장 관장님은 "거기도 태권도장 많아요"라고 하시는데, 과연 우리 동네에도 있을지.

제일 마음 아픈 건 큰애 친구들이랑 헤어지는 거예요. 1학년 때부터 같이 다닌 친구들인데. 지난주에 친구들이 송별 파티 해줬대요. 큰애가 선물 받아 온 거 보니까 편지들이 잔뜩 있더라고요. "미국 가서도 우리 잊지 마", "카톡 하자" 이런 내용들. 보는데 코끝이 찡했어요.

어제는 작은애 유치원 졸업식이었어요. 다른 애들은 같은 초등학교 갈 준비하는데, 우리 애만 미국 간다니까 선생님들이 많이 아쉬워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예쁜 애를 보내야 하다니"라고 하시면서 울먹이시는데, 저도 같이 울 뻔했어요.

그래도 남편이 어제 좋은 얘기 해줬어요. "우리 어릴 때 유학 가고 싶어도 못 갔잖아. 애들한테는 좋은 경험이 될 거야"라고. 맞는 말이긴 해요. 저도 중학교 때 유학 가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했거든요. 우리 애들은 부모 따라가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영어도 배우고 다른 문화도 경험하고.

오늘 아침에 큰애한테 물어봤어요. "정말 가기 싫어?" 그랬더니 "싫은데... 또 궁금하기도 해"라고 하더라고요. 10살짜리도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구나 싶었어요.

비행기 표 끊으면서도 고민 많이 했어요. 애들 것까지 네 장. 편도로 끊었는데도 천만 원 넘게 나왔어요. 결제 버튼 누르는데 손이 떨리더라고요. 진짜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기분.

짐 싸면서 계속 생각해요. 애들한테 이게 좋은 선택일까. 한국에서 평범하게 크는 게 나을까, 아니면 힘들더라도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게 나을까. 정답은 없겠죠. 가서 살아봐야 아는 거고.

내일은 애들 짐 마저 싸야 해요. 큰애가 꼭 가져가고 싶다는 책들이랑, 작은애 인형들. 이삿짐 무게 제한 때문에 많이는 못 가져가지만, 그래도 애들이 낯선 곳에서 위안 받을 수 있는 것들은 챙겨주고 싶어요.

가기 전에 애들이랑 놀이공원도 가기로 했어요. "한국에서의 마지막 에버랜드"라고 하니까 애들이 좀 시무룩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어요.

비자 서류 가방에 넣으면서, 집 계약서 확인하면서, 학교 등록 이메일 다시 읽으면서. 준비는 다 한 것 같은데도 뭔가 빠뜨린 게 있을 것 같은 불안감. 애들은 그저 우리만 믿고 따라오는데, 우리가 과연 잘 이끌어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