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의사 남편

첫 솔로 시술하던 날

by 연우아빠45 2025. 8. 14.

"Dr. Kim, you're doing the colonoscopy for room 3 today."

어텐딩이 아침 회의에서 말했을 때, 심장이 쿵 했어요. 드디어.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혼자 하는 대장내시경. 한국에서는 하루에 20개씩 했는데, 여기서는 이게 이렇게 큰일이 됐네요.

환자 차트 확인하는데 손이 떨렸어요. 55세 남성, 루틴 스크리닝. 간단한 케이스. 한국 같으면 10분이면 끝낼 건데. 간호사가 "Ready when you are, doctor"라고 하는데, ready한지 모르겠어요.

시술실 들어가니까 환자가 "Hey doc, please be gentle"라고 농담해요. 한국에서는 환자들이 긴장해서 말도 안 하는데, 여기 환자들은 시술 직전까지 농담을 해요. "I'll do my best"라고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나도 긴장돼요'라고 생각했죠.

스코프 잡는데 느낌이 달라요. 기계도 다르고, 세팅도 다르고. 한국에서는 눈 감고도 했는데. 천천히, 조심스럽게 시작했어요. 간호사가 옆에서 지켜보는 게 느껴져요. 평가받는 기분.

삽입은 순조로웠어요. 근육 기억이라는 게 있나 봐요. 10년 동안 몸에 밴 게 갑자기 돌아왔어요. 맹장까지 도달했을 때, "Good job"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죠.

그런데 빼면서 관찰하는데, 폴립 하나 발견. 제거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냥 했는데, 여기서는 뭔가 확인해야 할 게 있을 것 같아서 "Should I remove this?"라고 간호사한테 물었어요. "Your call, doctor"라고. 맞아, 내가 의사지.

폴립 제거하고 나오는데 30분 걸렸어요. 한국에서는 15분이면 충분했는데. 환자가 깨어나면서 "How did it go?"라고 물어요. "Everything went well. I removed one small polyp"라고 설명하는데, 영어로 설명하니까 뭔가 어색해요.

점심시간에 어텐딩이 "How was your first solo?"라고 물어요. "It went well"이라고 대답했는데, 덧붙였어요. "But I was nervous." 어텐딩이 웃으면서 "I still get nervous sometimes"라고. 정말? 30년차 의사도?

오후에 또 내시경 두 개. 점점 손에 익어요. 세 번째 할 때는 20분 만에 끝냈어요. 간호사가 "You're getting faster"라고. 칭찬인지 빨리 하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네 번째 환자. 비만이 심해서 삽입이 어려웠어요. 10분 넘게 시도했는데 안 돼요. 한국에서도 어려운 케이스는 있었지만, 이렇게 안 된 적은 없었는데. 결국 어텐딩 불렀어요.

"I need help"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어요. 10년차 전문의가 도움 요청하는 게. 어텐딩이 와서 "These cases are always tricky"라고 위로하면서 같이 했어요. 5분 만에 성공. 역시 경험의 차이인가.

일주일 후 M&M 컨퍼런스(Morbidity and Mortality conference). 합병증 사례 발표하는 시간. 제 케이스는 없었지만, 다른 펠로우가 천공 케이스 발표하는 거 들으면서 식은땀이 났어요. 나도 실수할 수 있겠구나.

한 달쯤 지나니까 하루에 5-6개씩 배정받아요. 이제 좀 익숙해졌어요. 한국만큼 빠르진 않지만, 그래도 standard time 안에는 끝내요. 간호사들도 "Dr. Kim is getting good"이라고 수군거리는 걸 들었어요. 정말?

한국인 환자 왔어요. 70대 할아버지. "한국 의사 선생님이시네요"라고 반가워하시더라고요. 한국말로 설명하니까 편해요. "한국에서도 내시경 많이 하셨어요?"라고 물으시길래 ", 좀 했습니다"라고 겸손하게.

시술 끝나고 할아버지가 "한국 의사가 역시 꼼꼼하네"라고. 이 한마디가 왜 이렇게 힘이 되는지. 영어로 백 번 칭찬받는 것보다 한국말 칭찬 한 번이 더 와닿아요.

어느 날 어텐딩이 "You have really good hands"라고 했어요. 손기술이 좋다는 거죠. "I can tell you have experience"라고도. 드디어 인정받는 건가? "Thank you"라고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춤췄어요.

펠로우 동기들이랑 얘기하다가 알게 됐어요. 저만 긴장한 게 아니더라고요. 인도에서 온 친구도 "My first solo was disaster"라고. 중국에서 온 친구는 "I forgot everything"이라고. 다들 비슷하구나.

이제 컨설트 콜도 받아요. "GI fellow on call"이라고 전화 받으면 아직도 좀 어색하지만. 병동에서 "We need GI consult"라고 하면 가서 봐요. 영어로 recommendation 쓰는 게 아직 어렵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지난주에 복잡한 케이스 했어요. Large polyp, 제거하는데 40분 걸렸어요. 어텐딩이 옆에서 지켜봤는데 개입 안 했어요. 끝나고 "Excellent job"이라고. 이번엔 진짜 칭찬 같았어요.

오늘 스케줄 보니까 내시경 8. 한국에서는 오전에만 20개 했는데, 8개가 많다고 느껴지네요. 미국 스타일에 적응한 건가, 나이 들어서 체력이 떨어진 건가.

집에 와서 아내한테 얘기했어요. "이제 좀 의사 같아"라고. 아내가 "원래 의사잖아"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에요.

어텐딩이 최근에 "You should think about what you want to do after fellowship"라고 했어요. 2년 중 벌써 10개월이 지났네요. 시간 빠르다. Academic position? Private practice? 아직 모르겠어요. 영어가 더 늘어야 할 텐데.

오늘도 내시경 하면서 생각했어요. 한국에서의 10년이 여기서 완전히 무용지물은 아니구나. 손기술은 남아있고, 의학 지식도 있고. 단지 다른 언어, 다른 시스템에 적응하는 중일 뿐.

내일은 첫 ERCP(내시경적 역행성 췌담관 조영술) 트레이닝. 한국에서도 어려웠던 시술인데, 영어로 배워야 한다니. 긴장되지만 기대도 돼요. 또 하나씩 배워가는 거죠. 그렇게 진짜 미국 의사가 되어가는 거겠죠.